일기 : 새벽만남 chat

1. 
 막 생리가 터졌다. 따끈한 온열팩을 두르고 엎드렸다가 나갈 생각이었는데, 이내 온 몸이 나가길 거부하는 느낌이 들었다. 나가려는 그 직전까지 못간다는 카톡을 보낼까 말까 고민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가고 싶었다. 친구를 만나고, 이야기를 하고, 노래방에 가고 싶었다. 그래서 꾸역꾸역 나갔다. 배에는 온열파스를 붙이고.
 친구는 일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나는 옆에서 수학문제집을 풀었다. 약수와 배수 단원과, 무리식 단원의 체크문제까지 풀었을 무렵에, 친구의 일이 끝났다. 흡연석에 앉아있어서 실내에 있었음에도 몸이 약간 떨렸다. 피난 오듯 안쪽으로 들어와 핫초코를 마치 전투식량처럼 벌컥벌컥 마셨다.
 내 얘기는 별로 할 것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친구를 만났을 때와 지금 별로 달라진 상황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결국 투정인 이야기를 뭣하러 하나하는 회의도 있었고. 최근 환경이 바뀐 친구의 여러가지 이야기들은 굳이 내가 웃음을 지어내지 않아도 재미있었다. 진심으로 웃었다. 혼곤한 밤에 사람이 드문 카페에서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마치 대학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그렇지만 결국은 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친구는 문제집에 대해서 물었다. 나는 이 질문이 나올 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사실은 오면서 몇 가지의 대답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결국 어떤 대답을 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여튼 난 꿈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우리는 이른 아침 동이 틀 때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2.
 그 밤을 보내고 돌아오면서 글을 쓰고 싶다고 오래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그 동안 글쓰기에 얼마간의 환상, 혹은 의무를 지우고 있다고 생각했다. 요컨대 글을 잘써야 겠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결국은 글을 못쓰게 된다거나, 혹은 글이 가지고 있는 유용성이나 혹은 당위에 대해 고민하다가 결국 내가 썼던 글들을 하찮다고 여겨버렸던 경험들이 떠올랐던 것이다. 
 나는 그래서 그간 오래 글을 쓰지 못했다. '나에 대해서 쓰는 글쓰기'가 단순히 일기를 넘어 가지는 어떤 가치(?)나 유용(?)을 내 글쓰기로 증명해낼 방법이 었었던 것이다. 아! 그러니까 나는 내가 쓰는 글의 장르를 구분할 수 없었다는것이 적확하다. 더불어 '목적이나 목표가 없고, 심지어 장르조차 없는 글쓰기가 무슨 소용인가?' 하는 회의도 생겼다.
 그렇지만 애초에 장르가 불분명한 것이 뭐가 나쁜가. 그냥 글을 쓰고 싶은 것이면 굳이 내 글의 장르가 명확해야 한다는 데에 강박을 가지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물론 블로그라는 것의 특성상, 어떤 테마를 가지고 있는 것이 좋다. "그런 글은 일기장에나 쓰라"는 말도 있으니까. 그렇지만 나 같은 경우는 그 테마를 정하는데 연연하고, 그 규칙에 따라서만 글을 쓰려고 애썼으니 결국은 글쓰는 것 자체를 시작할 수 없게 된 경우이다. 그러니까, 블로그이긴 하지만 일단, 하루에 뭐라도 조금씩 쓰는 것으로 하자. 그외의 것들은 정하려고 들지 말자. 
이 것이 어제-오늘에 걸친 새벽 만남에서의 내 나름의 글쓰기에 대한 해답이다.

3.
 아직 명확하게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나는 내 나찾여가 어느 정도는 종착점, 아니 최소한 반환점을 돌았다고는 생각한다.
 어제 친구가 한 말 중 유독 하나가 선명하다. "왜 그 사람을 밟아버리고 싶다는 것이, 네 인생의 목표이면 안 돼?" 그 질문에 뒷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그래, 왜 모든 목표의 동기는 숭고해야 하지? 내가 그 사람을 밟아버리려고 무엇이 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나는 무엇이 되던 되지 않던 어차피 그 사람을 평생 잊을 수 없다. 누구라도 평생에 걸쳐 계속 마음의 갈고리에 걸리는 사람들이 있을 것 아닌가. 그렇다면, 그에 대한 감정을 분함으로 남겨두고 싶지 않다. 밟아버리고 뿌듯함으로 남겨두고 싶다. 최소한 내 마음 속에서. 그것이 얼마간의 내 삶의 동력이 되는 게, 나쁘거나 틀리지 않을 것이다.
 더불어 이제 그건 내 꿈이 되었다. 아니, 처음부터 그것은 내 꿈이었다. 본질은 그대로 있었는데, 내가 도망치기 위해서 거기에 어떤 변명이나 이유를 붙여 퇴색시키려고 애썼던 것이다. 하지만, 사실 처음부터 그 꿈의 본질은 내 지적 호기심에 근거한다. 명예욕에 근거한다. 한가지 새롭게 생긴 이유가 있다면, 그 사람보다 좀 더 좋은 위치로 가서 그를 밟는 것. 아마 그것일 것이다.ㅡ 공부도 계속 할 것이다.

결벽 chat

채식주의자들의 인터뷰를 읽다가

"고양이를 귀여워하면서 소고기를 먹는 사람들은 극단적 인지부조화와 정신분열초기같다"라는 글을 보고 이 인터뷰의 어조가 궁금해졌다. 극단적 인지부조화와 정신분열 초기 라는 단어 모두 냉정한 정신에서 학문적인 단어사용의 어조 그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면 했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이 인터뷰이에게 반감이 들고 말것이다. 왜냐하면 이 인터뷰이가 소위 주장하는 동물권에서 인간은 빠져있는데다 심지어 혐오의 대상인듯 보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인간ㅡ혹은 인간의 가능성?ㅡ을 존나 숭배하는 듯한 양가적인 뉘앙스도 보이는데 도대체 이 인터뷰이의 인간상은 얼마나 숭고하길래... 하는 삐딱한 생각이 든다.

하여간 나는 결벽이 있는 사람과는 맞지않는 모양이다.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곧은 일관성을 모든 분야에 적용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외려 소름끼친다.

채식이냐 육식이냐의 이분법보다 동물이든 인간이든 (그나저나 이 둘이 다르긴한가?) 사는 동안 얼마나 그답게 살수있는가,혹은 지금 세상의 공간이 인간위주라면 그 안에서 그답게 살 수있게 해줄것인가 정도의 고민이 내가 할수있는 것 같다. 예컨대 방목을 한 닭을 굳이 찾아먹는 정도.

여진구 :-> people

스킨 본문 테스트로 귀여운 멋있는 예쁜 진구.
겸사겸사 예쁜 사진이니까 밸리에도 발행...하려다 어느 밸리로 향할지 모르겠어서 망.

나와 n년 차이라니! 말도 안된다.
아슬아슬하게 nn년을 면한 것에 감사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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